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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가도 모를 예비군 훈련

망고스틴. 2022. 6. 10. 08:24


최근 코로나에 대한 위기의식이 점점 잦아들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행사나 이벤트들이 다시 재개되고 있는 것 같다. 예비군 훈련도 미뤄져 왔던 그런 이벤트 들 중 하나였는데, 이제 다시 재개가 된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게 소집 통지가 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성인 남성들에게는 코로나 시대에 몇 안 되는 장점들 중 하나로 예비군 훈련 무기한 연기가 있었는데, 아쉽지만 이제는 다시 군복을 꺼내볼 타이밍이 온 것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225264?sid=100

코로나로 2년간 중단된 예비군 소집훈련, 오늘부터 재개

기사내용 요약 훈련 8시간, 원격교육 8시간 혼합 실시 이종섭 "위기 상황서 예비군 역할 중요" [서울=뉴시스]최서진 기자 = 2022년도 예비군 소집훈련이 2일 시작된다. 올해 예비군 훈련은 소집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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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이 나라의 부름이 바로 오늘이었다. 훈련은 6시간이었고, 생. 각. 보. 다 시간이 빨리 갔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예비군 훈련에서 생각 외로 좋았던 것들도 있었다.


1. 시설이 좋다

새로 생긴 곳이라 그런지, 아니면 관리가 잘 돼서 그런지 생각보다 모든 건물들이 깨끗하고 잘 관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훈련 장비들도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도 깨끗했다. 예비군 훈련을 가기 전 혹시 몰라서 여행용 티슈도 군복 바지에 넣어갔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화장실에 휴지는 다 있거니와 훈련장 곳곳에도 물티슈랑 손 세정제가 잘 비치되어 있었다. 내 기준으로는 군대 화장실이 우리 회사 화장실보다 깨끗한 것 같다.


2. 교관, 조교들이 친절하다

이게 사실 제일 놀랐던 건데, 교육을 진행하시는 분들의 서비스 마인드가 매우 매우 좋다.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그동안 예비군들한테 민원 클레임을 많이 받으셔서 바뀌신 건지..) 거의 백화점에서 좋은 서비스를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말투도 지시하는 느낌이 아니라 최대한 배려하고 봉사정신이 담긴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훈련 진행을 보조하는 병사들은 CS 교육이라도 따로 받은 듯한 친절 로봇들이었다. 아마 친절에 대한 내 기대치가 매우 낮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훈련 내내 교관, 조교들 때문에 짜증 나는 일이 전혀 없었다. 물론 그만큼 예비군들도 말을 잘 들었다.(좋게좋게 마무리하고 가자~)


3. 밥이 맛있다

솔직히 군복만 입으면 어떤 게 입으로 들어가도 웬만하면 다 맛있긴 하다. 하지만 이번 예비군 도시락 점심은 확실히 달랐다. 밥도 푸짐, 반찬도 많고, 물론 이게 돈 주고 사 먹는, 그러니까 예비군 훈련 대상자에게 지급하는 일비에서 공제되는 밥이긴 하다. 그래도 돈 주고 맛없는 거 사 먹는 것보다 맛있는 거 먹는 게 훨씬 낫다. 밥을 맛있게 먹고, 나갈 때 설문조사 종이가 있길래 맛과 서비스 다 100점으로 기록하고 나가는데, 나의 설문조사를 지켜본 병사가 또 감사하다고 한다. 역시 또 위에서 말한 친절을 느낀 부분이다.


4. 디지털 디지털 디지털..?

아래 기사처럼 예비군 훈련은 재래식을 떠나 테크, 과학적인 훈련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사실 이런 기술을 활용한 훈련 방식은 예전부터 있긴 했지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432133?sid=100

VR로 실전처럼 ‘탕탕’…2년 6개월 만에 돌아온 예비군 훈련[청계천 옆 사진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여파로 2년 6개월간 중단됐던 예비군 소집훈련이 2일부터 재개됐다. 서울 서초구 과학화예비군훈련장의 군악대와 현역장병들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예비군들을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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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시간 내에 훈련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모로 시도하고 있는 점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다만 이런 디지털만을 위주로 훈련이 짜여 지는 게 실전에서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다.

물론 동기부여가 극한으로 낮은 예비군들을 대상으로 최대한 재미를 주면서 훈련을 진행하고자 하는 방향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모의 디지털 훈련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이게 훈련을 받아 보니까, 겉에서 보기에는 되게 훈련이 Fancy한데, 훈련을 마무리하고 나면.. 이게 훈련을 한 건지.. 그냥 오락실에서 재미없는 게임을 하고 나온 건지 살짝 의문이 든다. 특히 세트장처럼 꾸며 놓은 곳에서 벌이는 시가지 모의 전투 훈련은 레이저로 삑삑 쏘긴 쏘는데, 내가 상대편 킬을 했는지, 부상을 입혔는지, 탄이 맞는 방향으로 나가는 건지,, 이런 게 확인이 안되니까 좀 웃기긴 하다. 차라리 페인트 총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래저래 쓰다 보니 잡설이 길어진 것 같다. 예비군 훈련 6시간 좀 갔다 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구나 라고 글을 쓰면서 다시 느낀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냐? 훈련 내내 말을 한 마디도 안 했기 때문이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예전에는 분대 단위로 훈련 자율적으로 코스 골라가면서 분대원들끼리 초면이지만 으쌰 으쌰 했던 것 같은데, 이게 없어서 좀 아쉬웠다. (내가 그나마 했던 말은 분대장 역할 대본 읽기랑.. 훈련 대기 중에 교관이 '몇 조 나오세요~' 불렀는데, 그거 못 알아들어서 옆에 사람한테 '방금 몇 조 부른 거죠??' 한 말밖에 없었네..)

아무튼 대한민국 예비군, 국군 화이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