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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풋살을 끝내고 친구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평소 같았으면 시청 건물을 지나 광화문에서 평화롭게 내렸어야 했는데, 이날은 시청역에서 내렸다. 민주노총 대규모 시위가 있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고속버스가 진짜 많았고, 교통이 매우 복잡했다. 혼잡하다. 혼잡해. 날씨뿐만 아니라 시위 열기도 뜨거워 모든 것이 뜨거웠던 날이었던 듯하다. 흡사 매드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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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을지로에서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거의 2년 만에 보게 된 친구. 을지로에서 보는 만큼 어떤 특별한 메뉴를 먹을까 고민하다가, 평양냉면 맛집인 우래옥을 가기로 했다. 을지로 4가 역으로 가고 있는데, 5시쯤 먼저 도착한 친구가 카톡을 보냈다. "야 웨이팅 우리 앞에 145팀 있다" ... 145팀? 웨이팅을 아무리 길게 해도 그런 숫자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경험상 우래옥이 회전율이 좋긴 한데, 100팀이 넘어가면 뭐.. 이건 먹지 말라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친구한테 다른 거 먹자고 하려 했다. 그런데 친구가 그냥 근처 스타벅스 가서 음료 먹으면서 기다리다 자고 하길래, 마침 오랜만에 보기도 하는 거니 얘기도 나눌 겸 잘 됐다 싶었다. 카톡으로 웨이팅 순서를 확인할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스타벅스에서 기다렸고요.. 그리고 가게 앞에서 10분 정도 더 기다렸다. 주말 저녁에, 한 여름 더운 날씨에, 다들 냉면 먹고 싶은 생각은 똑같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그러니까 거의 2년? 만에 다시 먹은 우래옥의 평양냉면 맛은 매우 놀라웠다. 엄청 짰던 것이다. 그동안 을밀대나 필동면옥이나 다른 식당에서 먹었던 평양냉면들은 매우 매우 싱겁고 슴슴했다. 그런 맛에 비해 우래옥의 평냉은 엄청 짭짤한 편이었다. 확실히 짭짤하다고 느꼈을 때는 면을 먹었을 때였다. 국물은 보통 짭짤하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우래옥의 평냉은 면에도 짠맛이 잘 베어 있더라.
원래 이런 느낌이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맛이 좀 바뀌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김치도 예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짠지 느낌을 위해 새로 넣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좀 이상하다 했다.
그렇게 우래옥의 평양냉면 맛에 의구심을 좀 가져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 입맛이 변했나? 그러고 보니 우래옥을 처음 접했을 때는 평양냉면 어린이, 초심자여서 다른 평양냉면을 많이 맛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우래옥에서 먹을 때 "아 왜 이리 음식이 싱겁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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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평양냉면 식당들을 좀 다녀본 지금은 웬만한 슴슴한 맛에 적응이 되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싱거운 맛으로는 기별도 안 가는 수준이다. 여자친구 말대로 내가 싱겁게 먹고 다녀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내가 변해 놓고서 애꿎은 남 탓을 하는 걸 수도 있다. 남 탓을 하기 전,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 같기도 했다.
근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레옥이 변했건, 내가 변했건, 이러나저러나 나는 냉면 한 그릇 맛있게 잘 먹었다는 사실이다.. 짭짤한 맛은 그 짭짤한 맛대로 잘 먹을 수 있는 나의 입맛에 감사한다. 평소 인간관계도 이런 사람이나 저런 사람이나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잘 지내는 타입인데, 이런 나의 성향이 입맛에도 반영이 되는 것 같다.
끝.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ㅠㅠ
#우래옥 #을지로 #평양냉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