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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생 때의 일이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최근에 갑자기 오랜만에 생각났다.
2. 대학생 때 전공 수업에서 알게 된 중국인 여자 유학생 친구(이하 A)가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3. A와 같은 다른 중국인 여자 유학생이 (이하 B) 다른 중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교 과제를 대신해 준다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4. ‘과제를 어떻게 대신 해주는데?’ 라고 내가 되물었다. 그러자 A는 B가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과제 일감을 받아서 한국인 학생들에게 이 과제물들을 맡긴다고 했다. 그러면 한국인 학생들이 대신해주고 아르바이트비를 B에게 받는다고 했다.
5. ‘아, 과제를 대신해 줄 한국인 학생을 구해서 중국인 유학생들의 과제를 중개해 주는 거구나.’ 그렇다. B는 과제 대행 브로커였던 것이다.
6. 당시 우리 학교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많았는데, (물론 지금도 많을 것 같다.) 한국어 실력과 수학 능력이 뛰어난 중국인 유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유학생들도 많았다.
7. 그렇지 못한 유학생들은 전공 과제는 물론이거니와 간단한 자료조사 과제조차 벅차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8. 대신에 그런 유학생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것 같다. 그러니 과제를 돈 주고 맡길 수 있었겠지.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학 올 정도의 중국인이면 주머니 사정이 나쁘지 않을 테니 말이다.
9. 당시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뭔가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A에게 B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나도 과제 대행을 하며 쉽게 아르바이트비를 벌어 보고 싶었다.
10. A는 나에게 B를 소개해 주었고, B는 나에게 과제 일감을 주기 시작했다. 처음 2~3개의 과제를 맡아서 할 때는 좋았다. 쉽게 금방 하고, 쉽게 돈을 받았다.
11. 그런데 점점 주어지는 과제물의 난이도가 올라가더니, 전공과목의 심화 과제까지 떠맡게 되는 지경까지 왔고, 심지어는 논문 첨삭까지 맡았다. 그러나 난이도가 올라간 만큼 금액이 드라마틱 하게 올라가진 않았다.
12. 의욕이 좀 꺾이고, 금세 귀찮아졌다. 그리고 뭔가 바람직한 일도 당연히 아니니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뭔가 중국인의 노예(?)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13.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과제 대행 알바를 그만두었다. 그만두자마자 해방감이 들었다.
14. 시간이 흘러서 나는 과제 브로커인 B를 소개해 준 친구 A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꽤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15. B는 생각보다 꽤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한 학기에 그녀가 벌어들이는 금액은 무려 80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그녀는 본인의 등록금을 충당하고, 남은 돈으로는 해외여행까지 다녔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몇 년간의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16. 금액을 구체적으로 들은 순간 헉했다. ‘대학생이 한 학기에, 한 학기라고 해봤자 4개월 정도인데, 800만 원을 땡기다니.’ 좀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7. 보통의 한국 대학생들은 과외를 해서 한 달에 5~60만 원도 힘들게 벌 것이다. 그런데 B는 거의 직장인 월급 수준의 용돈벌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학교를 다니면서 말이다. ‘재주는 곰(한국인)이 넘고, 돈은 왕서방(중국인)이 받는다’라는 말도 떠올랐다. 진짜 이 말만큼 적절하게 이 상황을 표현한 속담도 없을 것 같다.
18.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역시 비즈니스를 하려면 중국인 상대로, 중국 시장에선 놀아야 하나..’ 같은 일차원적인 생각 말이다.
19. 그리고 B가 관리하는 한국 학생들은 그 수가 꽤 많다고 했다. 심지어 여러 전공에 퍼져 있어 과제의 유형에 따라 적절하게 일감을 배분한다고 했다. 이건 거의 뭐 경영인의 경지다. 단순 과제 브로커가 아니었다.
20. 왜 갑자기 오랜만에 대학생 때 일화가 생각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참 세상에는 재밌게 사는 친구들이 많다는 생각을 당시 했던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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