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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동물

망고스틴. 2022. 7. 31. 17:02

- #내가 좋아하는 반려동물/반려식물 #내가 좋아하는 식물/동물 중 하나를 주제로 문장쓰기 (최소 다섯 문장)와 짧은 설명을 게시글에 댓글로 적어주세요.


© gdakaska, 출처 Pixabay

1. 동물을 막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굳이 좋아하는 동물을 하나 꼽아보자면 고양이를 꼽겠다. 이유는 당연히 모두가 그렇듯 귀여워서. 그리고 무엇보다 예전에 키웠던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키우지 않는다.



2. 고등학교 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인 나는 심심했는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워보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새끼 고양이를 분양한다는 글을 보고 아버지와 함께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여자 혼자 사는 오피스텔이었다. 키우던 고양이가 새끼를 많이 낳아서 분양을 하는 것 같았다. 러시안 블루라는 품종의 고양이였다. 아버지는 4,5마리의 새끼 고양이들 중에서 가장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놈으로 찾았다. 뒷다리를 손으로 잡아보고 제일 빠져나가려는 의지가 적은 녀석으로 골랐다.



3. 이름도 지어주었다. 같이 살게 될 고양이의 이름은 '냠냠이'로 부르기로 했다. 내가 차 타고 지나가면서 본 '냠냠 분식'이라는 분식집 간판을 보고 붙인 이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최악의 네이밍 센스였다. 게다가 발음상의 어려움 때문인지 '냠냠이'는 점점 '냥냥이'가 되어 갔다. ( 원작자인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하릴없이 나도 냥냥이로 부르기 시작했고, '냠냠이'는 '냥냥이'가 되었다. 춘식이 같은 이름으로 했으면 정감 가고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초코, 해피, 호두 같은 이름보다는 냥냥이가 나은 것 같다).



4. 냥냥이가 우리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가 생각이 난다. 거실 서랍장 밑으로 들어가 나오지를 않았다. 낯설어서 그런 듯했다. 새로 산 고양이 화장실이 민망했다. 그때는 살짝 걱정도 되었다. 화장실을 못 가리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 말이다. 근데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냥냥이는 잘 적응했고, 시간이 더 지나니 집 주인이 되었다. 집안을 우다다 뛰어다니고, 소파 가죽도 뜯는 천방지축 개냥이가 되었다. 냥냥이를 분양 받기 전 아버지가 심사숙고해서 시도한 뒷다리 테스트가 무색했다.



5. 그래도 냥냥이 덕분에 나는 고양이의 특성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고양이를 만지려고 사람이 먼저 다가가면 도망가는데, 다가가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만져달라고 사람에게 찾아오는 그런 츤데레 같은 특성 말이다. 또 사람이 만져주면 좋아하는 고양이의 신체 부위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들을 만졌을 때 이상한 골골 소리를 내는 것도 함께 알게 되었다.



6. 냥냥이는 나를 많이 방해하기도 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했던 10대 후반 ~ 20대 초반 시기였던 만큼 나는 내 방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 공부를 하고 있으면 갑자기 냥냥이가 울면서 내 방으로 걸어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살짝 열려 있는 문 틈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면서 문을 열고 들어온다. 만약 방문이 완전히 닫혀 있다면 열어달라고 앞 발로 문을 긁어서 소리를 낸다.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주고, 냥냥이는 나폴레옹처럼 의기양양하게 내 방에 입장한다. 그리고서는 내가 공부하고 있는 책상으로 뛰어올라서 문제집 위에 누워버리거나 볼펜에다가 제 얼굴을 비비는 행위들을 한다. 이후에는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나는 냥냥이를 책상에서 끌어내려 내 허벅지 위에 내려놓는다. 수긍하고 잠시 앉아 있던 냥냥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책상 위로 도전한다. 아마 냥냥이만 없었다면 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7. 냥냥이는 우리 가족들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 찾아오는 친척들이나 나의 친구들, 손님들에게도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냥냥이는 호불호가 강한 성격이라서 그런지, 누군가에게는 바닥에 몸을 굴리면서 환대해 줬고, 누군가에게는 침대 밑에 숨어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8. 그렇게 냥냥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군대에 있을 때까지 우리 가족과 6년 정도를 함께 했다. 냥냥이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까지 말이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는데 냥냥이가 없었다.



9. 부모님에게 냥냥이의 장례를 치른 얘기까지 들었다. 뭔가 허했다. 슬프지는 않았다.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 그렇구나..'했다. 내가 냥냥이에 애정이 많이 없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갑자기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어벙벙했다. '왜 냥냥이를 그렇게 보냈냐'라고 부모님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장례를 치른 지 몇 달이 지나서 모든 게 정리가 된 부모님을 앞에 두고 나 혼자서 뒤늦게 슬퍼하기에도 이상했던 것 같다.



10. 다만 내가 전역을 하고 나서도 한 1~2년 동안은 집에 있을 때 계속 냥냥이 생각이 났던 것 같다. 아니, 생각이라기보다는 뭔가 냥냥이가 집에 있다는 착각을 좀 했던 것 같다. 내가 혼자 방에 있을 때 냥냥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으니까 말이다. 가끔 방 문이 열리거나 긁히는 소리가 나려나 하고 문 쪽으로 귀를 열고 기다려 보기도 했던 것 같다.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책상에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어도 방해받을 일이 없었다. 한동안은 방해받지 않는 게 뭔가 불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11. 이렇게 예전 기억을 되새겨 보니 내가 좋아하는 동물은 고양이라기보다는 냥냥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좋아하는 동물이라는 질문을 생각하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은 것 같다. 뭔가 아쉽고, 후회가 남는 그런 감정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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