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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는 못 해먹겠다

망고스틴. 2022. 8. 10. 08:21
© pandelache, 출처 Unsplash

1. 유튜버가 되고 싶었다. 전업 유튜버가 아닌 직장을 다니면서 활동하는 유튜버인 직장인 유튜버로. 직장을 잘 다니고 있지만, 퇴근 후에는 멋있는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그런 유튜버 말이다. 직장인의 2대 허언 중 하나인 '유튜브나 시작해 볼까'를 허언이 아닌 참말로 만들고 싶기도 했다. (참고로 직장인의 2대 허언 중 다른 하나는 '퇴사해야지' 다)



2. 7월 한 달간 목표도 야심 차게 유튜브 영상 제작으로 잡았다. 목표는 주 2회 영상 업로드에 구독자 50명 달성. 영상을 꾸준히 올리는 게 1차 목표였고, 구독자는 생기면 좋고, 없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했다.



3. 그리고 나의 유튜브 채널 컨텐츠를 뭘로 할까 고민했다.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러면 고민하다가 끝날 것 같아서 일단 뭐든 시작하기로 했다.



4. 그 시작은 내 생각을 영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블로그에 내 생각이 담긴 글을 쓰는 것처럼 내 생각을 대본으로 만들고 음성 녹음을 하기로 했다. 영상 편집에 시간을 덜 쓰기 위해 영상은 따로 찍지 않고 스톡이미지나 스톡영상을 활용했다.



5. 첫 주는 야심 차게 시작했다. 주 2회 업로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이런저런 컨텐츠를 고민하며 유튜브에 시간과 애정을 쏟았다. 그 결과 퀄리티가 훌륭하지 않음에도 첫 영상 업로드에만 무려 1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6. 첫 번째 영상이라고 해도 영상 하나 올리는 데 1주일씩이나 걸리다 보니까 진이 다 빠졌다. 그래도 영상 편집을 예전에 학원에서 배워 둔 게 있어서 다행이지, 이것도 없었다면 한 달 내내 할 뻔했다. 그렇다고 해도 편집 프로그램을 다루는 지식만 조금 있을 뿐, 작업 시간이 단축될 편집 수준 까지는 또 아니었다.



7. 영상편집에 시간을 쏟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컨텐츠를 만들 것인지 편집 전 앞단에서 기획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각 단계에서 고민과 실행을 하다 보니 최종 완성을 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렸던 것이다.



8.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영상을 주 2회 업로드하겠다는 나의 목표는 2주 차부터 언감생심이 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퇴근 후 멋있는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겠다는 나의 꿈은 퇴근 후에도 고통받는 직장인으로 변질됐다. 스트레스가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9. 평소에 나는 챌린저스라는 습관형성 앱에 돈을 걸고 나를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번에도 유튜브 영상 제작 습관을 만들기 위해 챌린저스 내 유튜브 챌린지를 참여했다가 챌린지에 건 돈을 잃을 뻔했다. 영상을 업로드하지 못하고 질질 끌다 보니 인증을 못할 뻔했기 때문이다.



10. 결국 7월 한 달 동안, 정확히는 한 3주 동안 퇴근 후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꾸역꾸역 유튜브 영상 만들기에 쏟다 보니 금방 지쳐갔다. 물론 영상의 조회 수나 구독자도 오르지 않았다. 그런 결과를 확인하면 더더욱 기운이 빠졌다. (재밌는 영상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상편집이라는 게 퇴근 후에도 할 만큼 유쾌하진 않았다.



11. 대신에 유튜브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영상 편집보다는 기획이나 글쓰기를 더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12. 힘들디 힘든 영상을 만들면서도 유일하게 몰입이 되고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음성 더빙을 위한 대본을 작성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영상편집을 할때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기획이나 대본을 위해 글을 쓸 때는 시간이 어떻다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그 일에 몰입하게 되었다.



13. 어떤 소재와 주제로 내 생각을 이야기할까 기획을 위한 글을 쓰고, 음성 더빙 대본을 위해 글을 작성하는 순간만큼은 에너지 소모가 1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글을 완성하고 나면 에너지가 살짝 생기는 느낌이었다.  



14. '글쓰기.' 나는 유튜브를 위한 영상을 만들어보고 나서야 영상 편집보다는 내가 더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활동은 글쓰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더 이해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15. 야심 차게 도전한 유튜브는 실패했지만 대신에 예상치 못한 수확을 거뒀다. 글을 쓰는 재미를 알게 된 것, 그리고 나를 알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직접 해봐야 안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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